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89식 척탄통 (문단 편집) == 타국에서의 운용 == 많은 수가 사용되었기에 [[미군]]에 다수가 노획되었는데, 이때 뜻하지 않은 소소한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. 받침대의 모양이 오목한 것을 본 미군 병사들은 '이거 [[무릎]] 위에 놓고 쏘는 무기로구나.'라고 착각해서 그렇게 발사해봤다가 부상당해 병원에 실려간 것이다. 그래서 10식 척탄통과 함께 '''무릎 박격포'''(knee mortar)라고 불렸으며, 당장 미군의 노획무기도감에 '''__해당 무기를 절대 무릎이나 다리에 대고 쏘지 말 것!__'''이라는 문구가 붙었다.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external/api.ning.com/Kneemortar.jpg|width=100%]]}}}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external/memberfiles.freewebs.com/KneeMortSmall.jpg|width=100%]]}}} || || 이렇게 쏘면 무릎은 물론 다리가 부러지고 || 대충 이렇게(혹은 엎드린 자세로) 쏴야 한다. || [[중일전쟁]]에서 일본군과 맞상대한 [[중국]] [[국민당군]]은 이 무기가 별로 기술이나 자원을 들이지 않고도 양산가능한 것에 주목, 민국 27년식 척탄통(民国二七年式擲弾筒)으로 카피 생산하기도 했다. 훗날 이것을 노획한 [[중국 인민지원군|중공군]]이 [[6.25 전쟁]]에서 사용했으며 특히 전쟁 후반 고지 쟁탈전에서 자주 사용되어 그 기민성으로 [[유엔군사령부|UN군]]을 '''귀찮게 했다'''. 다만 신관 구조상 경사지에서 불발되기 쉽고 수평발사시에도 불발이 잘 되어 [[기관총]]에 비해 위협적이진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. 중공군은 한국전쟁 이전인 [[중일전쟁]] 기간중에도 [[옌안]]등의 근거지에서 복제 생산을 했는데, 장약과 재질 등의 문제로 중공군이 복제한 척탄통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것보다 포신이 길다. 덤으로 복제 생산에 참가한 중공군 기술자의 회고에는 포신의 재료로 가장 좋았던 것은 '''강탈한 [[철도]] 궤도를 [[토법고로|토로법(土爐法)]]으로 녹여서 만든 것'''[* 이후 중일전쟁과 [[국공내전]]에서 승리하여 권력을 잡은 [[마오쩌둥]]은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토로법을 이용해 강철을 생산하는 정책을 펼친다. '''[[토법고로|하지만 그 결과는...]]''']이었다고. 그리고 [[베트남 전쟁]] 초기 베트민군이 사용하기도 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